2010년 09월 26일
민족사를 연구할 때에 생기는 딜레마는 민족의 기원과 정체성에 대하여 개념을 정리하는 것이다.
뿌리를 강조하여 논리를 전개하다보면 민족 기원의 연대가 역사서에 기록된 것 이상으로 한 없이 올라가야 하며, 그러다 보면 한 뿌리에서 갈라져 나온 여러 국가와 겹치게 된다. 민족의 역사를 오래 된것으로 간주하면 얼핏 자랑스러운 것 같으나, 민족의 범위가 필요이상으로 넓으져서 동아시아 역사는 물론이고, 세계사 까지 한국사에 포함시켜 버리게 된다. 이는 오히려 한국인의 정체성을 훼손하게 된다. 심하게 말하자면 족보도 없는 잡종 민족이 된다는 것이다. 죽어서 선조의 얼굴을 대할 면목이 있는가?
단군신화는 민족의 뿌리를 강조한 것인가? 민족의 정체성을 강조한 것인가?
주류사학과 재야사학의 공통된 견해는 단군의 아버지 환웅을 이주민족으로 간주하고, 곰과 호랑이를 토착민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이는 신화에 대하여 무지함을 드러낸 것이라 하겠다. 토착과 이주라는 용어는 상대적 개념이며, 고조선의 옛 땅에 처음오로 도시를 건설하고 농경을 시작한 민족이 환웅족이라는 것이 분명한 기록인데, 하늘에서 왔다는 표현에 집착한 나머지 환웅족을 이주민으로 해석한 것은 큰 잘 못이다. 환웅이 이주민이라서 곰과 호랑이는 자동적으로 토착민이 된다는 단순한 논리에서부터 한국인의 정체성을 크게 손상되고 만것이다.
우리 역사를 왜곡하고 축소한 것은 김부식이 아니라 오늘날의 후손들이라는 것부터 반성해야 한다.
역사가 인간의 시점에서 기록된 것이라면, 신화는 신의 시점에서 기록 된것이다. 인간과 신의 눈은 완전히 다르다는 것 부터 밝혀둔다.
어느 산중에서 돌부처와 나무 부처, 구리로 만든 부처상이 발견되었다. 역사가는 그것을 불상이라고 기록한다. 하지만 신의 눈에는 돌,나무, 구리 일뿐이다. 사람은 외모로써 대상을 인식하지만 신을 본질로써 대상을 인식한다.
지식이 발달하지 못한 시대에 사람은 나비의 알, 애벌레, 번데기, 나비를 다른 개체로 인식한다. 이는 한 대상에 대한 과거, 현재, 미래가 구분되기 때문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애벌레, 번데기, 나비를 하나의 정체성을 지닌 대상으로 인식한다. 인간의 지성은 과거, 현재, 미래 를 현재라는 시간 속에 가두어 인식할 능력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역사가 과거의 한 시점에 대한 기록이라면, 신화는 과거, 현재, 미래 의 모든 시간을 현재라는 범위 안에 가두어 버린다. 신은 시간을 창조할 뿐 시간에 종속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개천은 물리적 개념이 아니다. 신에 의지에 의한 시간의 시작을 의미한다. 때가 이르러 환웅이 온 것이 아니라, 한웅이 그 때를 연 것이다. 한웅은 개천이라는 시간에 종속되지 않고, 오히려 시간을 가리켜 깨어 나라고 명령한 것이다. 바이블에 새벽에 내가 깬다라고 기록하지 않고,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라고 기술한 것과 같은 방법이다.
단군 신화에서 환웅은 중국 사관이 말하는 천명사상에 캐릭터를 부여한 것이며, 신시와 풍백,우사,운사는 도시문명과 정착 농경문화에 대한 비유이다. 곰과 호랑이는 고대 사회가 끊임없이 이주와 침략에 의한 인종과 문화의 정체성 변동의 시기 였음을 말한다. 쑥과 마늘로 형상화 된 고유 문화는 의식주와 관습, 신앙 중에서 제일 처음 적응해야 하는 음식문화를 대표한다. 외국에 나가서 가장 처음으로 어려움을 겪는 것이 그 지역의 음식에 적응하는 일이다. 음식이 외적인 문화라면 환웅과 웅녀의 결혼은 민족 정신과의 결합이다.
세계 어느 문명 지역이라도 이주민의 핏줄과 문화를 수용하지 않은 예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국가 한 민족의 정체성이 유지되는 것은 곰과 호랑이의 예에서 보는 바 같이 서로 융합하는 문화가 있는 반면, 그저 침략과 약탈만 하다가 떠나버리는 민족도 있는 것이다.
일연이 삼국유사에 단군신화를 삽입한 의도는 명백하다. 몽고의 침략 이전에도 이 땅의 왕조와 백성들은 많은 침략을 받아왔다. 무력의 형태로, 문화와 사상의 유입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려인은 한 민족이며 한 국가로서 정체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의도에서 단군의 이야기로 삼국유사를 시작했다.
기자가 조선에 들어오고 단군이 산신이 되었다는 기록도 있다. 단군은 2000년을 사는 자연인을 뜻하지는 않는다. 2000년 동안 지켜온 단군사상이라고 해석해야 한다. 샤먼이 정치 이념으로서의 자리를 정치 사상에 자리를 내주고 대신 민간 신앙으로 물러 났다는 은유적 표현이다.
단군의 족보나 기자의 족보를 따질 이유도 없다. 샤먼이 유학에 정치 이념으로서 자리를 물려 준것은 수천년 동안의 사실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중국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지만, 중국이라는 나라는 100년 전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동아시아에 사상은 북방의 신 중심 세계관과 대륙의 인간 중심 세계관이 서로 부딪치고 융화하는 과정이었다. 문자가 사용되고 법률과 제도가 정비되면서 자연스럽게 유학과 같은 경전화된 정치가 도입된것이다. 공자가 유학의 시초라는 선입관부터 버려야 한다. 공자의 사상의 요순시대 이전 동아시아 세계관과 주나라의 예법을 성문화 한것에 불과하다. 공자는 원래 있던 돌을 갈아서 신석기를 만들듯이 원래 있던 사상고 제도를 유학이라는 도구로 형상화 했을 뿐이다. 기자조선의 학설에 열받을 이유가 없다. 고대 사회는 여러 도시 국가들이 산재 했고, 누구든지 천명을 받으면 천자가 될 수 있엇다. 기자의 시대는 중국인이니 한국인이니 하는 이분법적 세계관의 시대가 아니다.
# by ミ˙ω˙ミ | 2010/09/26 08:09 | +history | 트랙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