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과 해양

2천년 전 오리엔트와 지중해가 만났다.

가장 정신적인 문명과 가장 물질적인 문명의 싸움은 시작되었다.

알렉산더는 페르시아를 정복했고, 바울은 로마를 정복햇다.

둘의 방법을 완전히 달랐지만 이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니다.

한반도....


대륙과 바다는 다시 만나

 전쟁을 시작했다.


그리스인은 대리석을 조각하고 아프로디테라 불렀고.
사막의 예언자들은 신의 율법이 아름답다 노래한다.

가장 아름다운 존재는 가장 더러운 것을 이겨내는 것이리라.
더러운 자본을 이겨내는 영혼을 가진 사람이 가장 아름다운 존재이다.

가장 자유로운 존재는 가장 두려운 것에 굴복하지 않는 것이리라.
식민통치와 제국주의의 총칼 앞에서 외치는 자유의 노래여....

by ミ˙ω˙ミ | 2010/10/04 08:52 | +history | 트랙백 | 덧글(1)

우리의 고구려 역사관 올바른 것인가?

고구려는 중국과 대등한 제국이 아니라.
동아시아 유일의 천자국이다.

진시황 이래 동아시아인의 천하관은 달라진다.

과연 진시황은 천하를 통일한 것인가?

군현제를 바탕으로 한 중앙 집권적 제국이란 개념은 요순 하, 은, 주 까지의 시대에서는 생소한 개념이었다. 천하는 한 사람의 독점물이 아니고 왕은 그저 장자권의 개념이었다.

이러한 세게관이 달라진 것은 진시황이 육귝을 병합한 이후부터이다. 그런데 고조선은 진시황 이전의 천하관이 남아 있엇고, 고조선을 계승한 고구려도 그랬다. 고구려가 백제 ㅡ 신라  중국의 남북조 왕조를 병합하지 않은 것은 고대 의 천하관이 그대로 남아 있엇기 때문이다.. 그러무로 5호 16국 시대란 말은 잘못된 말이다. 고구려의 시대이다. 고구려가 유일한 천자국이었다. 그런 연유로 광개토 대왕이 영락이란 연호를 사용한 것이다. 이는 중국과 독립된 자주적인 연호라는 의미가 아니고

중국 남북조와 한반도를 통틀어 유일한 천자국이란 의미이다.

우리는 고구려를 과소 평가했다.

고구려의 천손 신화는 역대 왕조의 천명 사상과 동일한 개념이다.  당나라와 고구려가 전쟁을 한것은 단순한 영토 확장이나 민족독립의 차원이 아니라 누가 동아시아의 종주국인가를 따지는 이념적 전쟁이다.



고구려는 수나라, 당나라와 천자의 자리를 다투는데 우리는 고작 고구려가 삼국통일을 못했다느니, 중국과 맞서 한민족의 자주정신을 지켯다는 수준의 협소한 개념으로 말한다.

고구려인들이 들으면 어이가 없을 것이다. 연남생이 당나라에 귀순한것을 민족반역자 정도로 알것이 아니다. 천명이 고구려에서 당나라로 갓다고 판단한 것 뿐이다. 당나라도 세월이 지나면 천명을 잃을 것이고,
고구려의 후예들, 금나라, 청나라는 천명을 받아 천자가 되었다.

조선이 사대주의라고 비판하는데, 실상은 조선이 명의 종주권을 인정한것에 불과 하다, 명이 천명을 잃으면 조선이 천자국이 되는것도 유교 이념상 그릇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구려가 중국사니 한국사니 하는 다툼은 고대인들에게는 한심한 노릇이다.


주나라가 은나라를 명말시켯지만 은나라의 종묘사직은 보존되고, 송나라에 이어졋다.

고구려가 망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지만, 발해와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한 것은 사실이다.


고구려가 은나라와 같은 천자의 나라였다면, 발해와 고려는 제후국으로 격이 낮아진 것이다. 이름만 황제를 부친다고 격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고려나 조선도 군주가 덕을 쌓고, 문화가 발전하면 언제라도 천자국으로 격상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주족은 이미 이루었고, 한국은 아직 이루지 못햇을 뿐이다. 현재의 국력이 작다고 해서 스스로 비하하고, 고려와 조선왕조의 선조들을 비난하는 짓은 못난 짓이다. 알지도 못ㅎㅏ고 연구도 하지 않으면서 조상탓 하는 버릇은 우리의 발전을 가로 막는다.

by ミ˙ω˙ミ | 2010/09/27 19:00 | +history | 트랙백

진시황 이전과 이후

B.C. 221년 진왕 정이 6국을 차례로 멸망시키고 영토를 병합한다. 그러나 천하에 전국칠웅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진나라와 조선의 차이는 무엇인가? 진나라는 6국을 병합했고 조선은 6국을 병합하지 못했다.

진나라가 6국의 영토를 병합해서 고대사가 모두 진나라 역사가 되는가? 그런 논리라면 조선이 진나라를 병합해도 진시황 이전의 역사는 모두 조선의 역사가 된다.

봉건 왕조중에서 마지막으로 대륙의 주인이 된것은 만주족의 청나라이다. 청나라가 명나라와 티벳, 위구르, 내몽골 등을 차례로 병합했는데 그러면 청나라 이전의 동아시아 역사는 모두 만주족의 역사가 되어야 한다는 논리이다.

중국사를 한족의 역사로 간주한다는 것은 자체모순이다. 한나라는 오호십육국 시대에 이미 사라진 나라이다. 그러면 이후 왕조가 한나라를 계승했는가? 그렇다면 왜 송나라와 명나라는 나라 이름을 계승하지 않았나? 이것을 잘못이라고 지적하지는 않겠다. 동아시아의 역사는 전왕조를 계승하는 측면과, 천명을 받은 민족이 천하의 주인이 되는 두가지 형태가 같이 있어 왓기 때문이다.

다만 계승하지 못한 역사는 세계사의 한 부분으로 남길 것이고, 계승한 역사는 계속 이름을 이어 가면 된다.

진 나라와 한나라의 죄는 무엇인가? 천명을 받아서 천하를 얻엇다면 요순과 하은주 왕조의 이념대로 각나라 각민족의 자치권과 전통을 보존해주어 야 했다. 조선과 고구려는 천명에 따라 이러한 정치 이념을 계승했고 타국을 병합한 예가 없다.이것이 지나가 동아시아 역사의 계승자로서 정통성이 없다는 근거이다.

한나라와 송나라, 명나라에 이르기까지 한족 왕조는 유학을 정치이념으로 삼았다. 그러나 공자의 시대만 해도 중앙집권적 사회가 아니었다. 모든 권력을 한족에게 집중시키고 유학을 논한다는 자체가 유학의 이단이다. 유학의 이념은 요순시대의 이념이며, 제도는 주나라의 제도이다. 절대로 공자가 유학의 시조가 아닌것이다. 공자는 다만 성문화 시켰을 뿐이고, 이념에 추구하는 도구로서 학문을 제시했을 뿐이다. 유학은 정치이념과 개인수양을 위한 도구이지 신적 존재는 아닌 것이다.



나는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천하는 춘추시대에도 막힘이 없었고 각 지역의 인재들은 어느 나라에 가서 관직을 얻을 수도, 장사를 할 수도 있었다. 진시황을 통일 한 것이아니라 중국을 만들었을 뿐이다. 진나라에 복속되었다고 해서 모든 백성이 하나의 민족이 되었다는 것은 넌센스다. 하나의 민족이 된것이 아니라, 하나의 황제에게 모두 노예가 되었다고 해야 진실이다.

by ミ˙ω˙ミ | 2010/09/26 09:25 | +history | 트랙백

민족의 뿌리와 정체성 사이의 딜레마

민족사를 연구할 때에 생기는 딜레마는 민족의 기원과 정체성에 대하여 개념을 정리하는 것이다.

뿌리를 강조하여 논리를 전개하다보면 민족 기원의 연대가 역사서에 기록된 것 이상으로 한 없이 올라가야 하며, 그러다 보면 한 뿌리에서 갈라져 나온 여러 국가와 겹치게 된다. 민족의 역사를 오래 된것으로 간주하면 얼핏 자랑스러운 것 같으나, 민족의 범위가 필요이상으로 넓으져서 동아시아 역사는 물론이고, 세계사 까지 한국사에 포함시켜 버리게 된다. 이는 오히려 한국인의 정체성을 훼손하게 된다. 심하게 말하자면 족보도 없는 잡종 민족이 된다는 것이다. 죽어서 선조의 얼굴을 대할 면목이 있는가?

단군신화는 민족의 뿌리를 강조한 것인가? 민족의 정체성을 강조한 것인가?

주류사학과 재야사학의 공통된 견해는 단군의 아버지 환웅을 이주민족으로 간주하고, 곰과 호랑이를 토착민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이는 신화에 대하여 무지함을 드러낸 것이라 하겠다. 토착과 이주라는 용어는 상대적 개념이며, 고조선의 옛 땅에 처음오로 도시를 건설하고 농경을 시작한 민족이 환웅족이라는 것이 분명한 기록인데, 하늘에서 왔다는 표현에 집착한 나머지 환웅족을 이주민으로 해석한 것은 큰 잘 못이다. 환웅이 이주민이라서  곰과 호랑이는 자동적으로 토착민이 된다는 단순한 논리에서부터 한국인의 정체성을 크게 손상되고 만것이다.
우리 역사를 왜곡하고 축소한 것은 김부식이 아니라 오늘날의 후손들이라는 것부터 반성해야 한다.

역사가 인간의 시점에서 기록된 것이라면, 신화는 신의 시점에서 기록 된것이다. 인간과 신의 눈은 완전히 다르다는 것 부터 밝혀둔다.
어느 산중에서 돌부처와 나무 부처, 구리로 만든 부처상이 발견되었다. 역사가는 그것을 불상이라고 기록한다. 하지만 신의 눈에는 돌,나무, 구리 일뿐이다. 사람은 외모로써 대상을 인식하지만 신을 본질로써 대상을 인식한다.

지식이 발달하지 못한 시대에 사람은 나비의 알, 애벌레, 번데기, 나비를 다른 개체로 인식한다. 이는 한 대상에 대한 과거, 현재, 미래가 구분되기 때문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애벌레, 번데기, 나비를 하나의 정체성을 지닌 대상으로 인식한다. 인간의 지성은 과거, 현재, 미래 를  현재라는 시간 속에 가두어 인식할 능력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역사가 과거의 한 시점에 대한 기록이라면, 신화는 과거, 현재, 미래 의 모든 시간을 현재라는 범위 안에 가두어 버린다. 신은 시간을 창조할 뿐 시간에 종속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개천은 물리적 개념이 아니다. 신에 의지에 의한 시간의 시작을 의미한다. 때가  이르러 환웅이 온 것이 아니라, 한웅이 그 때를 연 것이다. 한웅은 개천이라는 시간에 종속되지 않고, 오히려 시간을 가리켜 깨어  나라고 명령한 것이다. 바이블에 새벽에 내가 깬다라고 기록하지 않고,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라고 기술한 것과 같은 방법이다.

단군 신화에서 환웅은 중국 사관이 말하는 천명사상에 캐릭터를 부여한 것이며, 신시와 풍백,우사,운사는 도시문명과 정착 농경문화에 대한 비유이다. 곰과 호랑이는 고대 사회가 끊임없이 이주와 침략에 의한 인종과 문화의 정체성 변동의 시기 였음을 말한다. 쑥과 마늘로 형상화 된 고유 문화는 의식주와 관습, 신앙 중에서 제일 처음 적응해야 하는 음식문화를 대표한다. 외국에 나가서 가장 처음으로 어려움을 겪는 것이 그 지역의 음식에 적응하는 일이다. 음식이 외적인 문화라면 환웅과 웅녀의 결혼은 민족 정신과의 결합이다.

세계 어느 문명 지역이라도 이주민의 핏줄과 문화를 수용하지 않은 예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국가 한 민족의 정체성이 유지되는 것은 곰과 호랑이의 예에서 보는 바 같이 서로 융합하는 문화가 있는 반면, 그저 침략과 약탈만 하다가 떠나버리는 민족도 있는 것이다.

일연이 삼국유사에 단군신화를 삽입한 의도는 명백하다. 몽고의 침략 이전에도 이 땅의 왕조와 백성들은 많은 침략을 받아왔다. 무력의 형태로, 문화와 사상의 유입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려인은 한 민족이며 한 국가로서 정체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의도에서 단군의 이야기로 삼국유사를 시작했다.


기자가 조선에 들어오고 단군이 산신이 되었다는 기록도 있다. 단군은 2000년을 사는 자연인을 뜻하지는 않는다. 2000년 동안 지켜온 단군사상이라고 해석해야 한다. 샤먼이 정치 이념으로서의 자리를 정치 사상에 자리를 내주고 대신 민간 신앙으로 물러 났다는 은유적 표현이다.
단군의 족보나 기자의 족보를 따질 이유도 없다. 샤먼이 유학에 정치 이념으로서 자리를 물려 준것은 수천년 동안의 사실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중국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지만, 중국이라는 나라는 100년 전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동아시아에 사상은 북방의 신 중심 세계관과 대륙의 인간 중심 세계관이 서로 부딪치고 융화하는 과정이었다. 문자가 사용되고 법률과 제도가 정비되면서 자연스럽게 유학과 같은 경전화된 정치가 도입된것이다. 공자가 유학의 시초라는 선입관부터 버려야 한다. 공자의 사상의 요순시대 이전 동아시아 세계관과 주나라의 예법을 성문화 한것에 불과하다. 공자는 원래 있던 돌을 갈아서 신석기를 만들듯이 원래 있던 사상고 제도를 유학이라는 도구로 형상화 했을 뿐이다. 기자조선의 학설에 열받을 이유가 없다. 고대 사회는 여러 도시 국가들이 산재 했고, 누구든지 천명을 받으면 천자가 될 수 있엇다. 기자의 시대는  중국인이니 한국인이니 하는 이분법적 세계관의 시대가 아니다.

by ミ˙ω˙ミ | 2010/09/26 08:09 | +history | 트랙백

정통성에 대한 기술 방법

역사서는 왕조의 정통성을 천명을 받았다고 기술한다.
신화는 천명이라는 표현보다는 하느님 또는 하느님의 아들로 기술한다.

이는 신 중심 세계관과 인간 중심 세계관의 차이다.

by ミ˙ω˙ミ | 2010/09/26 06:26 | +history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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